文化·藝術·觀光

진주를 말하다

우리 삶과 문화를 아우르는 빛, 극단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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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현장은 기꺼이 끌어안은 일상의 경험을 무대 위로 길어올려 현장감 있게 살려낸다.

삶을 이토록 빛나게 하는 문화의 확장으로 사람들의 감각을 일깨우는 극단현장의 세계와 조우하다.

2025년 <의기 논개> 공연 모습 [출처: ㈔극단현장.]

진주성 의암 일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 논개>는 진주시 대표 야간 관광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올해는 5월 2일부터 31일까지 10회에 걸쳐 국내 유일한 수상 특설 객석에서 5,400여 명이 관람했으며, 관람객 평점에서는 4.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의기 논개>를 선보인 ㈔극단현장은 1974년 8월에 창단한 이후 경상남도 전문 예술 단체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93년에 한 독지가의 도움에 힘입어 과거 병원 영안실로 쓰였던 지하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극단현장 전용 소극장’을 개관했다. 1998년에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한 뒤에도 그 소극장을 꾸준히 운영했으며 2007년에는 단관 영화관이었던 동명아트홀을 리모델링하여 ‘현장아트홀’을 새롭게 열었다.

전업 단원 시스템과 안정적인 공간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창작 활동에 전념한 ㈔극단현장은 대한민국 전역은 물론 해외 시장에도 진출하고 있으며, 지역 공연예술축제 기획, 시민극단 ‘이중생활’을 통해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진주시 연극 역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극단현장의 이력은 앞으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를 알고자 고능석 대표를 만났다.

Q. 연극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A. 대학 시절, 우연히 연극 동아리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마을 어귀에서 어른들과 함께 장구를 치고 춤추며 어우러졌던 *회치하는 날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었던 걸까요. 무대에 서서 칭찬받고 싶은 욕망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렇게 경상국립대학교 연극 동아리인 ‘경상극예술연구회’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주목받고 싶다’는 마음이었지만 그곳에서 겪은 함께 만드는 과정, 실패와 성장의 시간이 쌓여 삶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한 뒤에 복학하여 동아리 연습장을 찾았더니 당시 갓 태동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중요 배역을 맡은 후배가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아 제가 대타로 급히 투입되어 배역을 맡게 되었는데, 일주일 뒤 원래 역할을 맡았던 후배의 비보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종종 벌어졌던 연탄가스 중독으로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지요.
그리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진주지회 초대지회장께서 만성 신부전을 앓고 있어 신장투석을 하는 중임에도 꽃다발을 들고 한걸음에 연극을 보러 오셨습니다.
이런 기억들이 오롯이 남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몸에 스며들어 연극 동아리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1974년 극단현장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단원들이 모두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연극을 했었던 탓에 일종의 직장인 동호회 같은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극단현장에서 연출을 맡고 계셨던 고(故) 조구환 선배님이 전업 시스템으로 바꾸려고 하는 데 같이하자고 제안해 주셔서 첫 상근 단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회치 날 : 해치 또는 해추. 주로 봄, 가을에 온 마을 남녀노소 구별 없이 특정 날을 잡아 들과 산에서 신나게 노는 날이다. 이날만큼은 노동과 생활에서 오는 고통을 잊어버리고 다음날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출처: 백종기, 「내서의 구전 민요」. 2007.)

Q. 1993년 배우로 데뷔한 이후 연극 <불의 가면>으로 대통령상을 받으셨습니다. 배우에서 연출가, 극단 운영자로 역할이 바뀌면서 어떤 변화와 책임감을 느끼셨나요?

A. 극단현장 선배들의 권유로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2년 동안 연출부터 연기, 평론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극단에 복귀했습니다. 물론 힘든 연습 과정이 있었지만 1997년 연극 <불의 가면>으로 연기상을 받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극단에서 연출은 필요 때문에 맡게 되었는데 행정 업무까지 함께 맡게 되었고, 그 결과 무대 공포증을 겪게 되었습니다. 결국 선택의 기로에서 배우로서의 욕심은 내려놓고 연출과 극단 운영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운영자로서의 길도 쉽지 않았습니다. 상근 단원들의 월급을 날짜에 맞추어 지급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과 관객으로부터 “작품이 재미없다.”는 피드백을 듣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울증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역할에 대한 압박보다는 운영하다가 어려움에 맞닥뜨리면 단원들과 상의하면서 함께 나누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 마음이 훨씬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등산을 시작하면서 자연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게 되었고, 이제는 좀 더 유연하고 단단하게 마주하며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극단현장을 10년 동안 이끌어오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운영 원칙은 무엇인 가요?

A. 동랑 유치진 선생은 연극을 ‘진선미(眞善美)의 예술’이라 보았습니다. 여기서 ‘진 (眞)’은 진실을, ‘선(善)’은 올바름을, ‘미(美)’는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이 세 가지는 인간 삶의 본질과 방향, 그리고 이상을 탐구하는 예술의 근본 가치입니다. 동랑 선 생에게 연극은 단지 무대 위의 오락이 아니라 세상의 기울어진 곳을 바로잡고, 시 대의 어둠 속에서 진실과 희망, 아름다움을 밝혀 주는 예술적 실천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들, 복잡해서 알기 힘든 문제들을 무대 위로 가져와 진짜처럼 보여 주어 일상에 숨은 모습을 발견하면서 울고 웃으며 감동하는 아름다운 세계가 연극입니다.

여기에서 착안해 만든 극단현장의 운영 원리는 ‘일상에서의 경험을 무대 위로, 무대 위에서의 깨달음을 다시 일상으로’ 가져오는 순환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그 경험 을 관객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극단현장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이러한 ‘진선미(眞善美)의 철학’을 잃지 않는 것이지요. 상업적인 유혹이나 단기적인 성공 보다는 관객의 삶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연극을 만드는 것, 그것이 극단현장을 나아 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2006년  ‘논개순국재현극’으로 첫선을 보인 이후 2022년부터 실경 역사 뮤지컬로 변화한 <의기 논개>

2025년 실경역사뮤지컬

의기 논개

국내 유일한 수상 특설 객석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논개>는 예측 불가능한 자연과의 협업이다.

수무바다 흰고무래

진주에서 일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인권운동, 형평운동을 다룬 마당극
2021년 진주시의 진주 브랜드 작품 창작 공모 사업 선정

강목발이

진주에 전해오는 의적 강목발이 설화를 모티브로 2016년 초연
2016년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단체 금상 수상
대한민국 서울 페스티벌 초청 공연
카자흐스탄 국립고려극장 초청 공연

Q. 2006년 초연한 <의기 논개>부터 시인 김소월과 진주 출신 기생 채란의 이야기를 다룬 <팔베개의 노래>, 백정과 진주의 전설적인 도둑인 강목발이를 소재로 한 <강목발이>, 우리나라 근대 최초의 인권 운동인 형평운동을 다룬 마당극 <수무바다 흰고무래> 등 지역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지역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지역 극단으로서 일종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단지 무대에 ‘지역색’을 덧입히는 차원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철학’을 담고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지역의 삶과 기억, 갈등과 화해를 예술로 풀어내는 일은 오늘날의 보편적 감정과 만나야만 진정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효를 강조하는 옛날 이야기를 그대로 무대에 올린다고 해서 오늘날 관객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핵심은 그 안에 담긴 본질이 ‘진선미(眞善美)’의 가치에 부합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이 맞닿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유효한 철학과 메시지를 담기 위해 노력합니다.

올해 올린 <의기 논개> 역시 동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로운 사람, 즉 의인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는 진주 정신의 핵심인 주체정신(主體精神), 호의정신(好義精神), 평등정신(平等精神)과 연결됩니다. 진주 정신을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2025년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 논개>에서 논개를 연기한 이미주 배우

위기에 처한 동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 논개.
논개의 희생정신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Q. 무대 뒤에서 들려온, 가장 인상 깊었던 관객의 반응이 있습니까?

A. 올해 올린 <의기 논개>는 베리어프리(Barrier-Free) 공연으로 관객을 맞았습니다.
농인 관객들을 위해 전 회차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하고, 휠체어 좌석도 마련해 접근성을 높였습니다. 더 많은 관객이 공연을 함께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었는데 그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깊이 있게 다가왔습니다.

한 관객은 휠체어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어머니를 생애 처음으로 공연장에 모시고 올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 주셨습니다.
또 수어 통역을 맡으신 분께서 “배우들과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다.”라고 전하신 말씀이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라 의아했습니다. 알고 보니 공연의 오프닝 곡이 마지막에도 반복되는데 그 노래를 농인들과 함께 수어로 따라 부르셨던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우리 작품이 누군가에게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으며,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의기 논개> 공연 당시 수어 통역사의 모습[출처: ㈔극단 현장 제공]
정크클라운 중국 상하이
2024
정크클라운 일본 야마비코자
2019
정크클라운 중국 서안
2019
정크클라운 서울
2018

<정크 클라운>은 배우들의 숙련된 판토마임 기술과 고물을 이용한 기발한 역할 놀이로 웃음을 전하는 넌버벌 코믹 마임극으로 일본, 중국, 인도 등에 초청받으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Q. 진주시의 연극 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지역 연극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서울 연극은 재미있고, 지역 연극은 아마추어로 여기는 인식이 있습니다. 지역 극단들은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합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마케팅과 유통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지역의 문화재단 등과의 협업이 절실합니다. 단순한 창작 지원을 넘어 브랜드로 확장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합니다.

내가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2년 동안 공부했던 것처럼 경상남도에도 연극인 재교육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6개월에서 1년 과정으로 실기 중심으로 배우는 것이지요.

Q. 극단현장이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또 앞으로 극단현장이 어떤 방향과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고자 하는지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A. 1980년대 진주시의 원도심을 배경으로, 그 시절의 활기와 젊음, 희망을 담아낸 뮤지컬 <1988 진주역>과 동화 피노키오를 조선 시대 이야기로 재해석한 어린이 마당극 <피노키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결말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지만 여기서는 ‘즐겁고 신나게 살아가는 존재로 남겠다’는 새로운 해석을 담아 아이들과 부모님에게도 신선한 경험을 선사하게 될 것입니다.

극단현장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거창한 수치나 정량적 목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운영 원리’ 자체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삶의 본질과 방향’을 질문하며, 그 질문을 연극이라는 예술을 통해 세상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지켜나가는 ‘진선미(眞善美)’의 철학은 시대가 변해도 흔들리지 않을 우리의 중심이자 변함없는 나침반입니다.
또 극단현장은 지역 사회와 호흡하는 극단입니다. 시민 배우, 시민 합창단과의 협업을 통해 시민과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으며, 그 안에서 극단현장이 지역의 문화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일상에서의 경험을 무대 위로 가져가고, 무대 위에서의 깨달음을 일상으로 가져오는 순환을 지속해 나가며, 50년을 넘어 100년을 향한 근력을 키워나가는 극단현장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