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藝術·觀光
진주를 말하다
진주 이야기를 쓰는 사람, 김동민 작가
진주 한가운데를 흘러가는 남강. 그 강물을 따라 진주 사람들의 기억과 삶이 함께 흘러간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김동민 작가는 진주에 숨겨진 백성들의 이야기, 이름 없는 사람들의 역사까지 하나 하나 발굴하여 소설로 빚어낸다.
그에게 진주는 단순한 고향을 넘어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문학의 터전’이다.
진주의 역사와 진주 사람들의 삶을 담아온 그의 문학적 여정을 따라가 본다.

진주에서 태어난 김동민 작가는 『월간문학』 전경련 소설 현상공모에 당선되며 소설가와 문학평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제1회 〈김동리논문상〉을 수상하고, 조선일보·국립중앙도서관·교보문고가 공동 주최한 ‘길 위의 인문학’에 추천받았으며, 2005년에는 대표적인 문제 소설 작가로 선정되었다.
주요 작품집으로는 21권에 달하는 대하소설 『백성』을 비롯해 『비차』, 『아마존의 초가집』, 『양 강둑에 서다』, 『사막의 천둥』, 『박연-피리소리』, 『꼼쟁이 할매』 등이 있다.


김동민 작가의 청년시절과 현재
Q. 어쩌다 진주를 주제로 작품을 쓰게 되셨나요?
A.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바로 진주입니다. 작가라면 누구든 자기 고향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제 삶 속에 진주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어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진주에 대한 이야기가 됩니다.

Q. 작가님의 삶에서 ‘소설’이 처음 화두로 떠오른 것은 언제였나요?
A.
‘소설’이라는 화두를 처음 품은 것은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5학년 때입니다.
당시 진주교육청에서 시행하는 글짓기 대회에서 관내 여러 학교 6학년 학생들을 제치고 1등을 했던 일이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도 교내 백일장에서 2학년, 3학년 선배들보다 뛰어난 글 실력을 발휘하여 장원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개천예술제 같은 행사에서도 늘 상을 받았었지요. 그러자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저더러 ‘대작가’가 될 것이라며 칭찬해 주었어요. 그때의 어린 저는 기고만장해져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지금 당시를 되돌아보면 정말 부끄럽고 치기 어린 꿈이었지만 그런 화두를 품었던 것이 제가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도록 작용했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최장 대하소설을 집필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김동민 작가의 청년시절과 현재
김동민 작가의 청년시절과 현재

Q. 진주를 깊이 이해하려면 역사, 문화, 인물 등의 방대한 자료가 필요했을 것인데, 그 많은 자료를 어떻게 찾아내셨나요?
A.
우리 지역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뒤에 관련 서적을 찾아보았는데, 생각보다 자료가 많지 않아 사실 실망도 하고 오기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너무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창조적인 면에서 부적절하여 제외했습니다.
그런데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저에게는 큰 행운이 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진주 본토박이인 집안 어른들과 주위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많아 저절로 알게 된 것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굳이 떠올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어 진주성 안에 옛날에는 민가가 있었고 그곳에 은행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진주성 안에 살았던 분들을 수소문하여 만났습니다. 다섯 분 정도를 만나 그들의 기억을 토대로 소설 속 공간과 생활상을 재현했습니다. 이렇게 발품을 팔아 직접 듣고 확인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는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어떤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은 저만의 소중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독창적인 소설의 글감을 위한 훌륭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Q. 지역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으면서 작가님의 생각이나 방향이 달라진 부분이 있으신가요?
A.
책에서 본 내용과 어린 시절에 들었던 구전(구비)을 조합하고, 거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바꾸거나 어떤 곳에서는 사건의 순서를 뒤바꾼 부분이 있습니다. 시(詩)라고 하면 ‘시적 자유’ 또는 ‘시적 허용’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결말입니다. 작품을 구상할 때는 선(善)의 세력의 주체인 비화와, 악(惡)의 세력의 주체인 해랑(옥진)의 대결에서, 선이 악을 물리치는 전형적인 구도로 구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너무 상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백성’의 삶은 선과 악의 싸움으로 완전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갈등과 아픔, 애증으로 점철된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방향으로 결말을 수정했습니다.


진주성에서의 김동민 작가
Q. 진주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특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진주는 선비 문화, 교방(기생) 문화, 백정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독특한 고장입니다. 양반과 천민, 기생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 얽히며 살아온 점이 다른 도시와는 차별화되는 특징이지요. 또 진주는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교육을 시행한 ‘교육의 발상지’이고 진주 비단, 교방 음식, 탈춤 같은 전통문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리산과 남해에 인접하여 산나물과 해산물이 풍부해 삶의 터전도 넉넉했습니다. 이러한 점이 진주를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Q. ‘제2차 진주성 전투’를 구상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특히, ‘패배한 전투를 승리의 이야기로 쓰겠다’는 말씀이 무척 인상 깊은데 이 작품에서 어떤 이야기를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실 계획이신가요?
A.
진주성 2차 전투가 없었다면 일본군이 전라도로 진격하여 나라 전체가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을 것이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또 전쟁이 끝난 후에 조선은 그대로 국가를 유지했지만, 일본은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이 물러나고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새로운 막부(幕府)가 들어섰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조선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싶은 이야기는, 7만의 민·관·군을 대표하는 인물을 설정하여 각자의 신분과 위치에서 감당했던 역할과 소명 의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하여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을 만들어낼 계획입니다.

Q. 작가님에게 진주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저에게 진주는 분신과 같은 곳입니다. 진주 사람과 진주라는 지역 모두가 제 삶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대하소설 『백성』을 출간한 후 진주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고 그만큼 애정도 더 커졌습니다.
제 소설에도 담겨 있는 것처럼 진주는 선비 정신과 놀이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입니다. 한때 진주의 인구가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번성했다는 기억도 있습니다. 저는 진주 자체가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진주를 떠나 역사가 있을 수 없고, 역사를 떠나 진주가 있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특별한 곳입니다. 책을 출간한 후에는 ‘역사와 백성과 소설은 하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진주 자체가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진주를 떠나 역사가 있을 수 없고,
역사를 떠나 진주가 있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특별한 곳입니다.
Q. 진주와 경남지역을 배경으로 한 대하소설 『백성』이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들었습니다. 제작은 언제 완료되나요?
A. 아직 시작 단계인데 어쩌다 소문이 먼저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드라마가 예상했던 것보다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워 지금은 시간을 가지고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획사와 대본 작가 등은 이미 결정되었고 드라마 기획안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드라마 관계자들과의 미팅을 위해 서울을 오가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언젠가 드라마가 방영되는 날, 진주 사람들의 들불 같은 열정과 자부심이 더해지기를 기대합니다.
Q. 진주와 관련된 작품을 집필하시면서 가지게 된 작가님의 철학이 있으신가요?
A.
진주에 대한 책을 쓰면서 저는 진주가 지리산과 남해안에 가까이 있어서인지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은 철학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느꼈습니다. 제 소설에도 등장하지만 진주농민항쟁, 형평운동, 항일의병 같은 정신은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진주 시민의 철학관으로 깊이 뿌리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하든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내가 ‘에나(’진짜‘의 방언) 진주 사람’이라는 마음만 있다면 진주에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차의 몸통이며 날개, 바퀴, 머리 등이 다시 조립되어
훌륭하게 완성된 형상으로 춤추고 노래하였다.
꼭 살아 있는 새가 날고 노래하듯.
난다 난다 비, 비차
진주성에 가 보자
비차 비차 비차다
진주성에 가 보자
김동민, 『비차』 中
Q. 작가님의 작품 중에서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었으면 하는 작품이 있나요?
A.
대하소설 『백성』을 제외하고 한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비차』를 추천합니다. 이 작품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조선의 고문헌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서인 『왜사기』에도 전라도 김제 사람인 정평구가 비차를 발명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비차가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기록으로 본다면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보다 무려 311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비행기입니다. 역사적인 고증이 이루어진다면 세계 항공사의 역사가 바뀌게 될 겁니다. 진주시와 사천시가 오늘날 항공우주산업의 중심지라는 점을 떠올리면 『비차』는 지역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스토리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된다면 진주시가 인류 최초로 비행이 이루어진 곳이라는 상징성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비차』가 영화든 드라마든 뮤지컬이든 영상화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원좌-진주성전도

『백성』, 『비차』, 『꼼쟁이 할매』 모두 진주 역사와 문학을 느낄 수 있는, 진주 사람으로서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김동민 작가의 대표작이다.
Q. 문학의 길에 들어선 후배 작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A. 요즘 젊은 작가들은 짧은 글을 빨리 쓰고 큰 문학상을 받는 데만 몰두하고 자료조사와 현장 취재,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는 기본기가 부족한 경향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좋은 작품을 쓰려면 발품을 팔아 현장을 직접 보고, 다른 작가의 작품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만의 개성이 생기고 글의 깊이를 더할 수 있습니다. 작가로서 사명 의식과 치열함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Q. 작가님의 소설을 읽을 독자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요즘은 ‘숏폼’의 시대라 하지만 우리 삶은 그렇게 짧고 단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모든 것이 더욱 복잡해져 그야말로 혼돈과 방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설의 생명은 인간과 세상을 깊이 파고드는 서사(敍事)에 있다고 보는데, 대하소설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설 『백성』을 관통하는 핵심은 ‘백성’이고, 백성은 곧 ‘사람’입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사람으로서 사람에 대해 좀 더 새롭고 깊이 다가가는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주의 이야기를 이토록 진심을 다해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김동민 작가는 우연히 진주의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끈기 있게 파고들어 자신만의 소설로 엮어냈다. 이 고통스럽고도 아름다운 문학의 세계에서 진주와 역사에 푹 빠진 그가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지 기대하며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