飮食·料理
진주를 맛보다
바다와 강을 오가는 민물장어, 그 맛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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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찾아오는 여행자들은 진주만의 특별한 맛을 경험하고 싶어한다.
진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향토 음식 중에서도 일명 ‘남강장어’, ‘민물장어’구이를 추천한다.



진주 사람이라면 촉석루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실컷 쐬고 남강 다리로 걸어가면 어느덧 연탄불에 장어 양념 타는 냄새에 식욕이 당겼던 추억이 하나둘쯤은 있을 것이다.
진주성에서 인사동 골목으로 접어들면, 민물장어가 곱게 그려진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풍국(豊國)’ 간판이 보인다.
진주 사람들에게는 입소문 난 민물장어 식당이기도 한 이곳에 민물장어와 함께 30년 동안 동고동락한 류창영(69) 씨가 퍽 능숙한 솜씨로 민물장어를 손질하고 있다.



장어는 손질이 쉽지 않은 식재료이다. 장어의 둥근 몸통은 손에 잘 쥐어지지 않으며, 특유의 점액질이 미끈거려 자칫하면 손에서 놓치고 만다.
게다가 장어를 반으로 갈라 내장과 뼈를 떠낼 때 자칫하면 피가 살집에 번지기도 하는데 장어 피에는 약간의 독 성분이 있어 깔끔하게 손질하는 게 중요하다.






산청군 신안면에서 나고 자란 그는 10대 후반부터 일할 곳을 찾아 가까운 진주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경호강과 냇가에서 자주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거든, 그래서인지 민물장어가 참 친근하게 느껴졌어.”




그 시절, 아직 앳된 그에게 식당 일은 손에 익지 않아 무척이나 서툴고 고되기도 했지만, 음식점에서 손님을 맞이할 때면 신바람이 절로 났다고 회상했다.
“사장님이 권한대로 ‘한식 조리사’ 자격증 공부도 하면서 점점 기술을 쌓았지, 사람들이 내가 만들어 준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면 참 행복해”



우연한 기회에 민물장어 도매업에 눈을 돌리고 익숙해 질 때쯤
갑작스럽게 그가 식당을 열게 된 이유를 물었다.
“장어 도매업을 하면서 남강의 명물이었던 ‘장어거리’, 거기를 한 이십 년쯤 드나들었거든, 장어집 장사하는 사람들이 다 내 친구고, 형, 동생이었어.
해질 때쯤 같이 앉아서 남강 보면서 장어구이에 술도 한잔 걸치고, 사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다 보면, 걱정도 잊어뿌고(웃음), 지금은 장어거리 자체가 없어졌지만 젊었을 때 참 거기서 많이 울고 울었지!”




손끝이 야무진 그는 민물장어 손질부터 양념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꼼꼼한 성격이다. 계피, 감초 등 20가지 이상의 한약재를 넣은 이 집만의 특제 소스는 수만 번의 시행착오 끝에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바르는 양념에 따라
양념구이와 소금구이로 나뉜다.


양념구이는 장어 머리와 멸치, 양파, 계피, 감초 등 한약재를 넣고 푹 삶아 낸 육수에 간장, 고춧가루, 생강, 마늘, 참깨 등을 다져 넣어 만든 양념장을 발라 석쇠에서 5~7분가량 구워 낸다.
이때 양념을 3~5차례 발라 장어 속살에 잘 스며들게 하면 최상의 맛이 나게끔 한다.


소금구이는 양념구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육수를 만든 뒤, 참기름 마늘 참깨 등을 넣어 만든 양념장을 발라 구워 낸다.
고춧가루가 첨가되지 않아 맵지 않고 느끼하지 않으며 맛이 구수하다.

장어구이 한 상이 기본 찬과 함께 정성껏 차려져 나온다.
양념이 고루 밴 민물장어의 도톰한 살집에 생강 채를 몇 개 올려 먹어본다.
민물장어의 부드러우면서도 기름진 살집,
향긋한 생강이 어우러지면 입안에서 장어는 금세 사르르 녹아버린다.


‘장어구이’ 탄생


처음에는 남강 다리 아래 야외 포장마차에서 평상을 펴놓고 시작했다고 한다.
20여 년 전 강변도로가 개통된 후 본격적으로 장어구이집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하는 가게가 하나둘씩 생겨나 ‘장어촌’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주는 예로부터 남강과 인근 하천에서 풍부한 민물고기가 잡히던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어류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특히 장어는 기력 회복과 보양식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음식이기도 했다.



동의보감에서는 ‘장어’를 일컬어
‘오장이 허한 것을 보하고 폐병을 치료하며 기력을 회복시키는 식품’이라고 소개했을 정도이다.

개천예술제와 남강유등축제 등 진주의 축제를
찾아오는 여행자들은 남강의 야경을 바라보며 먹는 장어구이는 필수 코스였다.
이제 남강변의 장어거리에는 ‘진주대첩역사공원’이
자리해 사라졌지만, 성지동 일대의
‘유정장어’, ‘풍국장어’가 그 오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바다와 강을 오가는 민물장어는 사시사철 언제 먹어도 좋지만, 나른한 봄날 꽤 잘 어울리는 음식이기도 하다.

오래전 남강변을 지날 때 즐비한 장어구이 집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와 기름이 뚝뚝 떨어지며 구워지는 장어구이의 냄새가 벌써 그립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