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光·旅行

진주를 탐하다

51년 작품의 시간, 소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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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명(鳴), 돌 석(石).
‘운 돌’이 지천인 진주 명석에서 ‘웃는 돌’이 많다는 기쁜 소식을 들으러 ‘소석원(笑石園)’으로 떠났다.

자연에 기대어 사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소석원으로 가는 길 전경

집현산이 감춰 둔 듯,
진주시 명석면의 ‘소석원’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솔기저수지를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길에 만난 좁은 포장도로는 이곳이 오염되지 않은 땅임을 증언하고 있었다.

바람을 따라 머리를 흔드는 나무들, 저 나무의 넉넉한 품에 깃들여 살아온 무수한 생명이 내는 소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나갔다. 성중사에 이르자, 너른 마당에 반복적인 곡선으로 이루어진 돌담과 광제산을 향해 솟아오른 뱃머리 모습의 돌담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산벚나무가 꽃망울을 틔우는 봄, 돌로 빚어진 수많은 작품이 사람들의 발길을 ‘소석원’으로 이끌었다.

소석원 전경
배 모양의 돌

인간은 자연을 닮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소석원’ 역시 마찬가지다.
전봉기 씨는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돌을 주재료로 삼아 켜켜이 쌓아 올렸다.
자연을 닮아가는 것에서 나아가 자연에 순응하며 자리 잡은 것이다.

몇 번의 방송과 2023년 진주시의 개인정원 선정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소석원’은 누군가에게 생활 터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수행처였다.
자연의 기운으로 몸과 마음을 닦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개인정원 지정 명패

전봉기 씨는 처음 이곳에 ‘SunShine Garde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가 명석면의 지명 유래에서 착안해 ‘소석원’을 생각했다고 한다.

“명석면이라는 이름에서 ‘명석(鳴石)’은 ‘우는 돌멩이’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고려시대 왜구의 침략으로 진주성을 정비할 때의 일입니다.
성을 쌓고 돌아가던 광제암 승려가 길가에서 굴러오는 돌 한 쌍을 만났다고 합니다. 승려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성을 쌓느라 고생하는 백성들을 돕기 위해 성돌(城石)이 되려 간다’고 대답했지요. 승려가 ‘성은 이미 다 쌓았다’고 전하자, 돌들이 그 자리에서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 마을 주민들은 명석각을 세워서 두 돌을 모시고, 매년 3월 삼짇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한 나그네가 51년 동안 돌을 하나하나 지어 날라 쌓았으니, 이제는 돌들이 그만 울고 웃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석원’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진주시 명석면의 유래가 된 자웅석[鳴石 雌雄石]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2호

자웅석

현재의 ‘소석원’이 되기까지 51년이 걸렸다는 전봉기 씨는 오랜 세월 돌을 쌓아 가꾸어 온 이곳을 세상에 개방해왔다고 알렸다.

“예술작품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이곳을 만들었습니다.
귀한 분들이 오셔서 편안하게 쉬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기 놓인 작은 돌 하나하나까지 씻고, 쌓은 뒤에도 다시 씻어냈습니다.”

반평생 돌과 함께한 전봉기 씨의 설명을 듣고 보니 눈앞에 놓인 돌멩이 하나도 예사롭지 않았다.

글귀를 적어 놓은 글
돌의자, 돌탁자

소석원을 찾아올 귀한 분들을 위해 전봉기 씨는 돌의자들을 곳곳에 만들었다.
삼삼오오 앉을 수 있는 돌의자부터 돌다리를 건너 왕이 될 수 있는 특별한 의자를 발견하는 동안 입을 다물 틈이 없었다. 집현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돌 웅덩이에 닿아 마르지 않고 흘렀다.

우물
여왕의 자리
소석원,돌에 깃든 삶

대전에서 자라 어느덧 아흔을 바라보는 전봉기 씨는 자연속에서 살아가며 모든 것은 다 때가 있음을 깨달았다.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도 계절이 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날이 있으면 매섭게 겨울바람이 부는 날이 있다.
그렇게 계절이 지나면 새로운 계절이 온다.

젊은 시절, 연이은 사업 실패로 방황하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식도협착증으로 건강을 잃었던 그는 1974년, 우연히 진주에 왔다. 집현산 언덕 양철집에 거처를 마련했지만, 수중에는 냄비와 망치, 지렛대뿐이었다. 비가 오면 땅이 질척이자, 이듬해 주변에 있는 돌을 모아 길을 낸 것이 계기가 되어 평생의 일이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35살의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유언처럼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천년을 가는 성을 쌓는 마음으로 살아라.’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며
부지런히 돌을 쌓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사용한 지게

전봉기 씨는 쌓여온 이야기를 두런두런 풀어 놓았다.

“전기도 전화도 없을 때, 산속에서 생활하던 저를 간첩으로 오인해 신고한 일도 몇 번 있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집에만 머물던 어느 날, 유일한 식량인 라면마저 다 떨어졌는데 마침 명석면 신기리의 구상회 이장님께서 찾아오셨어요. 그날 이후로 무려 6개월 동안 저를 챙겨 주시며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소석원을 시작한 지 40주년을 맞아 문집을 만들어 준 고마운 분도 있지요.

또 한 번은 우연히 지나가는 분께 커피와 라면을 끓여 드렸는데, 얼마 뒤 그분이 차에 목재를 가득 싣고 와서는 쓰라고 하시더군요. 그만큼의 호의를 받았다고요.”

전봉기, 정영순 어르신의 모습

전봉기 씨는 돌을 쌓아 정원을 가꾸며 삶을 새롭게 세웠다.
돌과 함께하던 그의 여정은 아내 정영순 씨를 만나 더 환해지고 풍요로워졌다.

큰 돌을 지게에 지고 나르다 보니 옷이 찢어질 때가 많았는데, 수선 가게를 운영하던 정영순 씨에게 옷을 맡기게 된 것이 특별한 인연이 되었다.

반듯한 돌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길은 결코 쉬운 길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석원’을 그림으로 생각하면 저는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정성을 쏟은 거지요.
빈센트 반 고흐는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해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소석원’도 그러하길 바랍니다.”

2024년

9월의 봄

솥골뜨락

화림가(花林家)

송림원(松林園)

월아산방

랄콜정원

햇살가득 선녀뜰

Blooming garden

2023년

소석원

백송

소담원

진주수진정원

일암정원

한사랑숲정원

利美地(image)

이정바위솔

진주구천 산나물정원

페레그리노

사랑그린정원

소나무농원

바람의 언덕

  • 주소 : 이반성면 발산길 10-1 (꽃향기 가득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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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정원 품은 10남매 뜰

Cafe AAM(올어바웃미)

아침노을정원

멍하니 숲

백광의 뜰

이화의 정원

새뜻정원

빈 배엔 달빛만 싣고

이:늘

성지원

시시한 뜨락

고철 테마파크

Sim`s Gallery

메종 B

예술촌 정원